더글러스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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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에서 넘어옴
분류
더글러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 | |||||||||||||||||
본명 | 더글러스 매카서 | ||||||||||||||||
출생 | |||||||||||||||||
사망 | |||||||||||||||||
국적 | |||||||||||||||||
복무 | |||||||||||||||||
복무 기간 | 1903년 ~ 1937년 1941년 ~ 1964년[1] |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원수 (General of the Army U.S. Army) | ||||||||||||||||
필리핀 육군 원수 (Field Marshal Philippine Army) | |||||||||||||||||
근무 | |||||||||||||||||
지휘 | UN군 사령관 | ||||||||||||||||
참전 | |||||||||||||||||
[ 정보 더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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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가. 통칭 맥아더 원수.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군인 중 한명이다. 일찍이 군인이 되어서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등 20세기에 벌어진 주요한 전쟁에 모두 참전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집안 역시 명문 군인 가문이어서 아버지 아서 맥아더는 육군 장성으로서 필리핀의 군정 총독이기도 했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이미 1910년~1920년 대에 국가적 영웅이었는데,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최연소 육군 소장, 최연소 육군 참모총장, 육군 원수까지 군의 주요지위를 거쳤으며, 태평양 전쟁과 일본의 전후처리에서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였고 한국의 6.25 전쟁에서도 인천 상륙작전 등을 지휘하며 활약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태평양 방면 연합군 총사령관, 육군 원수로서 지휘했으며, 우스갯소리기는 하지만 '일본의 백인 쇼군'으로 불렸을 정도로 종전 이후 연합군 점령하 일본에서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그렇기에 전후 일본 사회의 구조에는 그의 입김이 많이 남아있다. 그 때문인지 2006년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영웅들' 리스트에 포함되기도 하였다.[5][6] 6.25 전쟁에서도 유엔군 총사령관으로서 북한군이 우세한 상황을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성공적으로 반격하였으며 한국인들 사이에서 높은 인지도와 명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도 맥아더를 고평가하는데, 점령군의 사령관인데도 일본인들이 맥아더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본에 가혹한 벌을 내리지 않고 최대한 선처해주었으며 은퇴 이후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핵 공격을 "잔인했다"며 간접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여받은 약장 역시 매우 비범하다. 약장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명예훈장부터 시작해서 하나 받아도 가문의 영광인 수훈십자장 3회 수훈(천만에 가까운 미육군 누적참전 병력 중 현재까지 겨우 13,000명만 수훈받았다.), 하나 받아도 베테랑 병사 취급받는 은성훈장 6회 수훈, V기장(영웅적인 행동을 한 군인에게 수여)이 달린 동성훈장 수훈, 육군 수훈복무훈장 4회 수훈, 대통령 부대 표창 6회 수훈, 대한민국 정부의 무공훈장 중 최고 등급인 태극무공훈장 수훈, 그 외에도 육군항공 조종사 마스터 기장, 소총, 권총 특등 사격기장까지. 그야말로 맥아더는 군인으로서 '전설', '신화'라고 불릴만한 경력을 갖춘 명장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많은 문제를 노출하였다. 6.25 전쟁 당시 핵무기 사용과 중국으로의 확전(擴戰)을 반대한 군 통수권자인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다가 해임되는 등, 미군 역사에서 문민통제에 역행했던 대표적 장성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그는 화려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태평양 전쟁에서 태평양 방면 연합군 총사령관, 육군 원수로서 지휘했으며, 우스갯소리기는 하지만 '일본의 백인 쇼군'으로 불렸을 정도로 종전 이후 연합군 점령하 일본에서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그렇기에 전후 일본 사회의 구조에는 그의 입김이 많이 남아있다. 그 때문인지 2006년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영웅들' 리스트에 포함되기도 하였다.[5][6] 6.25 전쟁에서도 유엔군 총사령관으로서 북한군이 우세한 상황을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성공적으로 반격하였으며 한국인들 사이에서 높은 인지도와 명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도 맥아더를 고평가하는데, 점령군의 사령관인데도 일본인들이 맥아더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본에 가혹한 벌을 내리지 않고 최대한 선처해주었으며 은퇴 이후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핵 공격을 "잔인했다"며 간접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여받은 약장 역시 매우 비범하다. 약장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명예훈장부터 시작해서 하나 받아도 가문의 영광인 수훈십자장 3회 수훈(천만에 가까운 미육군 누적참전 병력 중 현재까지 겨우 13,000명만 수훈받았다.), 하나 받아도 베테랑 병사 취급받는 은성훈장 6회 수훈, V기장(영웅적인 행동을 한 군인에게 수여)이 달린 동성훈장 수훈, 육군 수훈복무훈장 4회 수훈, 대통령 부대 표창 6회 수훈, 대한민국 정부의 무공훈장 중 최고 등급인 태극무공훈장 수훈, 그 외에도 육군항공 조종사 마스터 기장, 소총, 권총 특등 사격기장까지. 그야말로 맥아더는 군인으로서 '전설', '신화'라고 불릴만한 경력을 갖춘 명장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많은 문제를 노출하였다. 6.25 전쟁 당시 핵무기 사용과 중국으로의 확전(擴戰)을 반대한 군 통수권자인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다가 해임되는 등, 미군 역사에서 문민통제에 역행했던 대표적 장성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그는 화려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1. 이름 표기 [편집]
Douglas MacArthur
MacArthur라는 인명의 영어발음은 [məˈkɑː(ɹ)θə(ɹ)](머카서)에 가깝다. [θ] 발음을 'ㅅ'을 표기할 것으로 규정한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와 "접두사 Mac-, Mc-은 자음 앞에서는 '맥'으로, 모음 앞에서는 '매ㅋ'로 적"는 것으로 규정한 "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을 토대로 한다면 옳은 "매카서"가 된다. 하지만 관용 존중 차원에서 통용되는 표기인 '맥아더'가 단독으로 인정되었다. 당시에 정확한 발음에 대해 몰랐다기보단 아일랜드/스코틀랜드계 성씨인 MacArthur[7]에서 Mac과 Arthur를 분리해 읽고 그 원형에 맞춰 맥아더로 표기하게 된 것이 굳어진 뒤 관용 표현으로 인정된 것. 사실 [맥, 아더]와 같이 끊어 읽으면 받침 ㄱ에서 [k] 발음이 나겠지만, 뒤에 바로 모음 '아'가 이어지는 바람에 받침 ㄱ이 유성음화되어 [매가더]의 [g] 발음으로 실현된다는 게 좀 에러다. 또한 Arthur의 'th'발음은 과거에는 유성음과 무성음에 관계없이 'ㄷ'으로 옮겼으나 무성 치 마찰음[θ]이므로 표기법상으로는 'ㅅ'이 된다. [8] 똑같은 원리로 굳어질 뻔했던 "아더 왕"은 현재 "아서 왕"으로 잘 쓰고 있기에 아쉬운 부분. 관용 표기라 하니 더글러스 맥아더만 이리 표현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아예 "MacArthur" 자체를 "맥아더"로 표기하기로 결정되었으므로, 같은 철자를 가진 다른 인명도 맥아더로 표기하는 것이 현행 규정상으로는 맞다.
일본어에서는 원어 발음에 따라 '맛카사'(マッカーサー)라고 부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것과 거꾸로 처박혔다는 뜻의 '맛사카사마'(真っ逆さま)를 이용해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한편 진적좌(真赤左)와 발음이 같다 하여 '진짜 좌익 빨갱이'란 드립으로 욕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중매체 문단 참조.
MacArthur라는 인명의 영어발음은 [məˈkɑː(ɹ)θə(ɹ)](머카서)에 가깝다. [θ] 발음을 'ㅅ'을 표기할 것으로 규정한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와 "접두사 Mac-, Mc-은 자음 앞에서는 '맥'으로, 모음 앞에서는 '매ㅋ'로 적"는 것으로 규정한 "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을 토대로 한다면 옳은 "매카서"가 된다. 하지만 관용 존중 차원에서 통용되는 표기인 '맥아더'가 단독으로 인정되었다. 당시에 정확한 발음에 대해 몰랐다기보단 아일랜드/스코틀랜드계 성씨인 MacArthur[7]에서 Mac과 Arthur를 분리해 읽고 그 원형에 맞춰 맥아더로 표기하게 된 것이 굳어진 뒤 관용 표현으로 인정된 것. 사실 [맥, 아더]와 같이 끊어 읽으면 받침 ㄱ에서 [k] 발음이 나겠지만, 뒤에 바로 모음 '아'가 이어지는 바람에 받침 ㄱ이 유성음화되어 [매가더]의 [g] 발음으로 실현된다는 게 좀 에러다. 또한 Arthur의 'th'발음은 과거에는 유성음과 무성음에 관계없이 'ㄷ'으로 옮겼으나 무성 치 마찰음[θ]이므로 표기법상으로는 'ㅅ'이 된다. [8] 똑같은 원리로 굳어질 뻔했던 "아더 왕"은 현재 "아서 왕"으로 잘 쓰고 있기에 아쉬운 부분. 관용 표기라 하니 더글러스 맥아더만 이리 표현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아예 "MacArthur" 자체를 "맥아더"로 표기하기로 결정되었으므로, 같은 철자를 가진 다른 인명도 맥아더로 표기하는 것이 현행 규정상으로는 맞다.
일본어에서는 원어 발음에 따라 '맛카사'(マッカーサー)라고 부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것과 거꾸로 처박혔다는 뜻의 '맛사카사마'(真っ逆さま)를 이용해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한편 진적좌(真赤左)와 발음이 같다 하여 '진짜 좌익 빨갱이'란 드립으로 욕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중매체 문단 참조.
2. 생애 [편집]
3. 평가 [편집]
4. 어록 [편집]
나는 항상 웨스트포인트로 돌아옵니다. 의무(Duty), 명예(Honor), 국가(Country)[11]가 항상 울려 퍼집니다. 오늘은 당신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합니다. 강을 건널 때 마지막으로 남은 인식있는 생각은 생도대, 생도대, 그리고 생도대(The corps, and the corps, and the corps)가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작별을 고합니다.[12]
마지막까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것은 도덕적인 용기, 확신을 갖는 용기, 꿰뚤어 보는 용기이고, 세상은 항상 용기있는 사람을 모함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군중의 고함과에 맞서는 양심의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역사만큼 오랜 싸움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용기는 역사를 이끌어 간다.
전쟁에서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In war, there is no substitute for victory.)[13]
우리는 이제 실업자가 되겠군.[14]
나는 돌아올 것입니다. (I shall return.)[15]
일본은 12살의 소년이다.[18]
일본인은 쇼군에게 칼을 대지 않는다.[19]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20]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자는 아마 자동화기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Whoever said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obviously never encountered automatic weapons.)
우리는 돈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싸웠고, 대공황의 해법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지 손을 벌리는 것이 아니다.
일본 사회는 철학을 잊어버리고, 윤리를 등한히 여기며 미학을 멀리한 사회이다.
우리는 모든 전력을 다하여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인천상륙작전은 5000대 1의 도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있지만 나는 그런 모험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며 적을 분쇄할 것이다.
전투에서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서 실패하는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21]
공산주의는 사상이 아니라 강도짓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 성실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기업을 만들고 기업을 운영해서 이윤을 남기고 정당하게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부르주아라고 부르며 전제군주제의 세습 신분인거마냥 선동해서 그들의 사유 재산을 강탈해서 공유하자고 하는 강도질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 우리 미국은 칼 마르크스 라는 악마가 만든 공산주의에 맞서 신성한 사유재산을 수호해야하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지켜야 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그것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춘보다 6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아이러니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20대라도 인간은 늙지만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22]
5. 후손 [편집]
맥아더의 외아들은 아버지의 소망과 달리 군인이 되지 않았고 맥아더라는 성마저 버렸다. 맥아더가 지은 시인 "아들을 위한 기도"는 한국에서 꽤 유명한데, 이 시의 주인공인 그의 외아들 아서 맥아더 4세는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자신의 성을 바꾸고 잠적했으며, 친한 친척들하고만 연락이 되고 있고 다른 행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에 의해 뉴욕 시에 거주한다는 것만 알려진 상태다. 2000년에 어머니인 진이 사망했을 때도 언론에는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햄버거 가게의 주인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완전 허구다. 오죽했으면 2000년대 중반쯤에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와 연락이 되는 친척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솔직히 이름 바꾸고 숨어버릴만 한게 그는 어릴 때부터 너무나 유명한 아버지로 인해 세간의 관심을 지나치게 받았다. 아버지가 원수 계급장을 달 정도가 되면 대개의 경우 그 아들은 이미 장성해서 사회의 중견이 되어 있지만[23], 아서 맥아더 4세의 경우 맥아더가 58세가 되어서야 본 늦둥이라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맥아더는 미군 최고위 장성이었다. 그리고 2차대전을 겪으며 맥아더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자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비상해져서 어렸을 때 이미 라이프지의 표지 모델이 될 정도였다. 또 맥아더가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을 때도 그는 고작 7살 꼬마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한 나라의 왕자나 다름없는 위치였고 세간의 관심 또한 평범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몰라도 장성하면서 그는 이런 세간의 관심을 점점 견디지 못했고 결국 아버지가 죽자 성을 바꾸고 은거하게 된다. 그의 친척들도 이런 그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절대 그에 대해서 노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형인 아서 맥아더 3세와는 사이가 좋았는지, 서로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자신의 형제 이름을 붙여줬다. 그래서 미국의 외교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2세는 실제로 더글러스 맥아더의 조카이고 더글러스 맥아더의 아들 이름은 아서 맥아더 4세이다.
솔직히 이름 바꾸고 숨어버릴만 한게 그는 어릴 때부터 너무나 유명한 아버지로 인해 세간의 관심을 지나치게 받았다. 아버지가 원수 계급장을 달 정도가 되면 대개의 경우 그 아들은 이미 장성해서 사회의 중견이 되어 있지만[23], 아서 맥아더 4세의 경우 맥아더가 58세가 되어서야 본 늦둥이라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맥아더는 미군 최고위 장성이었다. 그리고 2차대전을 겪으며 맥아더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자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비상해져서 어렸을 때 이미 라이프지의 표지 모델이 될 정도였다. 또 맥아더가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을 때도 그는 고작 7살 꼬마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한 나라의 왕자나 다름없는 위치였고 세간의 관심 또한 평범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몰라도 장성하면서 그는 이런 세간의 관심을 점점 견디지 못했고 결국 아버지가 죽자 성을 바꾸고 은거하게 된다. 그의 친척들도 이런 그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절대 그에 대해서 노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형인 아서 맥아더 3세와는 사이가 좋았는지, 서로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자신의 형제 이름을 붙여줬다. 그래서 미국의 외교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2세는 실제로 더글러스 맥아더의 조카이고 더글러스 맥아더의 아들 이름은 아서 맥아더 4세이다.
6. 여담 [편집]
- 옷차림새가 대단히 특이하다. 필리핀 육군 원수 정모에 짙은 레이밴 선글라스, 수제 콘파이프 담배(옥수수 자루로 만든 담배 파이프)가 트레이드 마크. 필리핀 원수 정모,[24] 선글라스와 함께 맥아더의 아이콘으로 유명한 콘파이프지만 사실, 그는 싸구려 콘파이프를 그다지 애용하지 않았고 실제로는 브뤼에르 나무로 만든 고급 수제품을 애용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검소한 이미지로 보이려고 콘파이프를 사용한 건 아니고 바빠서 고급 파이프를 챙기지 못해갖고 여벌로 준비해놓은 콘파이프를 물고 있을 때 사진을 찍혔는데, 하필 이때의 사진이 대단히 유명해져서 콘파이프가 그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또 맥아더 자신이 이런 이미지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라 그 뒤로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거나 대중 앞에 나설 때는 항상 콘파이프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정치인들조차 대부분 이런 식의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쓰지 못하던 시절에 그는, 시대를 앞서 이런 이미지 관리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했던 사람이었다.[25] 콘콥은 가격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내구성, 특히 내열성이 별로라 오래 쓸 수가 없다. 애초에 소모품인 것으로, 2020년 한국 기준으로 보더라도 저렴한 것은 만 원대 가격이다. 어지간한 것은 값이 7~8만 원대 정도인 브라이어(브뤼에르) 목재 파이프의 경우 관리만 적당히 해 주면 10년 이상 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데 비해, 콘콥 파이프는 가격은 1~2만 원대지만 잘 써도 1년 쓰기가 어렵다. 즉, 가격은 싸지만 오래 쓸 수 없어서 오히려 비경제적인 것. 따라서, 보급형에 가까운 콘콥 파이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애용하는 파이프는 따로 있지만 파이프 관리가 힘든 상황에서 막 쓰는 파이프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굳이 돈을 주고 파이프를 사지 않고 본인이 직접 제작해서 사용하는 경우다.[26] 즉, 맥아더의 아이콘인 콘콥 파이프의 경우 여기저기 전쟁터로 출장(...)다닐 일이 많은 맥아더가 예비용 파이프로 가지고 있던 것을 들고 있다가 우연히 사진이 찍혔고, 이후 대중적 이미지 조성과 득표를 위한 호응을 위해 사용했다고 보는 정도가 가장 적절할 것이다. 특히 대선 후보 출마 시에 맥아더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보수적인 농촌 주민들에게 콘콥 파이프는, 몇 번씩 직접 만들어서 써 본 소박하고 익숙한 아이콘이다.
특히 주로 사진에 나오는 콘콥 파이프는 실제로 물어보면 드럽게 크고 무겁다. 요즘에도 맥아더 콘콥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판매되고 있는데 일반적인 파이프보다 거의 3배는 더 무겁고 3배는 담배를 더 오래필 수 있다. (일반적인 파이프가 1시간 정도 피울 수 있다) 그러니까 맥아더가 콘콥을 떡하니 물고 사진은 맥아더다운 가오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의 화려한 사관학교 시절 성적이 증명하듯 매우 유능한 군인이었고, 교양과 학식 또한 높았다. 그가 남긴 많은 명언들이 그렇듯 언어를 구사하는 데 있어서도 특출난 재주가 있었다. 외모 또한 큰 키에 귀족적인 풍모가 있어서 정말 누가 보아도 엘리트 군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7일 맥아더는 수원비행장에 도착해서 한강 이북의 전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후퇴하지 않고 참호 속에 남아 있던 어느 한국군 병사에게 맥아더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냐고 묻자, 그 병사는 "상관의 후퇴 명령이 없습니다. 명령이 있기 전에는 이 참호를 지켜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탄복한 맥아더가 무슨 소원이 없냐고 묻자, 병사는 "국군에는 소총밖에 지급되어있지 않고 그나마도 탄약이 부족합니다! 적들을 저지하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무기와 탄약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27] 이에 감격한 맥아더는 바로 지원군 파견을 승인했다.[28] 참고로 이때 맥아더의 시찰 비행 기록은 현재까지 남아있다.# 일부에서는 이 만남의 주인공이 2013년에 작고한 신동수 씨라고 하는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는 정식으로 부정했다.
- 호주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호주는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영연방의 일원으로서 주력 사단이 대부분 북아프리카 등 유럽 전선에 파병나간 상황이라, 예상되는 일본의 공격에 상당히 취약한 상태였다. 그러나 맥아더가 미국의 급조된 2선급 사단과 준정규군인 호주 민병대를 이끌고 뉴기니 전선에서 악전고투, [29] 일본군의 전력을 야금야금 깎아 먹으면서 버텨내고, 산호해 해전에서 미 함대가 극적인 무승부를 이끌어내면서 호주는 일본의 위협에서 한숨 돌리게 되었다. 이후 뉴기니 전선에서, 그리고 미군의 과달카날 상륙 이후 과달카날에서 일본군 지상 전력이 급격히 소모되면서, 호주에 대한 일본군의 위협은 완전히 일소되었다. 소규모 일본군 병력이 호주 서부에 상륙했다는 떡밥이 있긴 한데, 어차피 전황에 손톱 만큼도 영향을 주지 않은 관계로 무시당했다(...). 이렇게 보면 호주에서 맥아더를 높이 평가해야 맞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평가는 높지만, 막상 미군이 태평양 전선에서 공세로 돌아선 이후로는 맥아더는 호주군의 주 업무를 전략적으로 가치가 떨어져 미군이 지나친 섬들에 대한 토벌전 정도로 한정지었다. 개전 초기, 가장 어려운 전선에서 열악한 여건에도 용감히 싸웠던 호주 사람들은 당연히 격분했다. 다만 이것은 맥아더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한숨 돌린 1943년 후반 이후 미국은 전후 국제정치판도를 설계하기 시작했는데, 호주군이 필리핀상륙까지 동행하면서 남서태평양 일대에서 종주권을 행사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만약 호주가 그럴 수 있었다면 전후의 인도네시아 독립과 엮여 어쩌면 태평양권의 군도 몇 군데를 확보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30]
- 3인칭화로 자신을 지칭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웃기다고 할 수 있는데, 저 3인칭화법이 전근대 유럽 군주들의 화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도 없다. 예를 들어서 미국 역사에서는 첫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자신을 3인칭으로 칭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건 맥아더가 스스로 군주, 혹은 대통령으로 인식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걸 부하들 앞에서 뿐만 아니라, 대통령 특사나 장차관들 앞에서도 종종 이런 말투를 썼다고 한다. 이는 스스로를 인류 역사에 남을 역사적 위인으로 생각한 맥아더의 자뻑(?)이었겠지만, 처음 접한 사람들은 다들 기겁했다고.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맥아더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런 식으로 말한 꼴이다. 트루먼을 무시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걸 확대해석이라고 볼 여지가 줄어든다. 최대한 축소해서 봐도, '내가 나인데' 급의 권위주의자 였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런 3인칭 화법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면 나오는 것이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야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런 3인칭 화법을 썼던 것으로 유명하다. 소문으로는 맥아더 본인도 자신을 카이사르의 환생으로 생각했다고 하나 실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전기작가 중에도 이런 떡밥을 문 사람이 있는지 자신의 맥아더 전기 제목을 'An American Caesar(미국의 카이사르)'라고 지었다.
근데 이 해석도 결국 맥아더가 스스로를 카이사르급으로 생각했다는 결론으로 되돌아가는 것 아닌가
- 맥아더는 군생활을 공병 장교로 시작했다. 당시 미군에서는 엘리트 코스가 공병이었다고 한다. 이는 이종찬과 비교되는 점이라는 말이 있다.
- 맥아더는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6개의 펜을 사용했다. 평소에 사용하던 만년필 외에 5개의 펜을 더 사용한 것인데, 이는 종전 문서에 서명한 펜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5개를 더 만든 것이다. 이 중 2개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항복조인식에 초대된 조나단 웨인라이트 미 육군 중장과 아서 퍼시벌 영국 육군 중장[31]에게 각각 1개씩 선물로 주어졌다. 1개는 아들에게 물려줬고, 1개는 웨스트포인트 미국육군사관학교에 보냈고, 마지막 1개는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에 보냈다. 맥아더라는 인물의 치밀함과 동시에 정치적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행동이다.[32] 여담의 여담으로 이 만년필은 모두 Parker사의 듀오폴드 만년필로, 이 때문에 파커사는 맥아더를 기리는 한정판을 발매하기도 했다.
- 맥아더 원수의 무공 훈장에 네 번째 백엽 장식을 서훈하는 트루먼 대통령. 사진 맨 오른편은 오마 브래들리 원수. 1950년 10월 15일 웨이크 섬.
- 웨이크 섬의 회담에서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몇 시간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잠시 눈을 붙인다고 한 게[33]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수하들이 감히 그의 잠을 깨우지 못한 건지 모르지만 트루먼이 도착해서 비행기 문이 열릴 때까지 미처 마중 나가지 못하고 트루먼은 비행기 문에 서서 마중나오는 그를 한참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그 뒤에 트루먼의 표현을 빌자면 "70살 쳐먹은, 그것도 원수라는 인간이 19살 소위처럼 빌어먹을 선글라스와 채우지도 않은 상의와 부착물들이 잔뜩 달린 모자를 쓰고 나온" 맥아더를 접견하고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트루먼이 "난 당신을 만나려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왔소.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따위 것이 아니오. 당신이 해리 트루먼이란 인간을 어떻게 대접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난 신경 안 쓰지만 다시는 군 통수권자를 기다리게 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하시오. 알아들었소?"라고 말하며 무안을 주었고 맥아더는 이때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34]
- 제46대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대선 토론 중 맥아더를 언급하여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맥아더 원수를 가장 좋아하는 장군으로 언급하며, 반대로 제임스 매티스 장군은 가장 과대 평가된 장군이라며 평가 절하하고 있다.
- 2017년 12월 17일, 6.25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측근이었던 에드워드 라우니가 별세했다. 최종 계급은 예비역 중장으로 향년 100세.
- 여러모로 맥아더의 파면은 이승만 입장에선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다. 1951년 당시엔 중공군의 참전으로 눈 앞에서 통일을 놓치게 된 상황에서 휴전에 대한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였다.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염원하였으나 미국 정부의 상당수 요인들은 제3차 세계 대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북진통일을 할 생각이 없었고 따라서 기존의 남한 영토를 어느 정도 수복하고 나면 바로 휴전을 할 생각이었다.[35] 맥아더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이승만과 뜻을 같이하여 북진통일을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이었는데 맥아더가 파면되었으니 이승만의 입장에서는 든든한 후원자를 놓친 셈이었다.
- 맥아더의 시계는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 모델이다.
- 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롱아일랜드 맥아더 공항은 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헌데 맥아더는 이곳 출신도 아니고 공항을 방문하거나 한 적도 없었다. 그의 필리핀 탈출 무용담이 전해지자 지역 주민들이 그의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해서 붙여진 이름.
7. 대중매체에서 [편집]
- 닐 스티븐슨의 소설 <크립토노미콘>에 보면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동시에 은근 웃기게 나온다.
- 일본 작가 모토 라이치의 가공전기 만화 몽환의 전함 야마토에서는 주적으로 등장. 다만 육군이라 주인공인 쿠루스와 별접점이 없어서 비중은 낮다. 어째서인지 실제보다 젊은 모습으로 나오며 상당히 경박한 모습이다. 작가인 모토 라이치는 후에 아사히 신문사에서 출간한 주간 망가 일본사에서 맥아더의 GHQ 통치기를 그렸다. 여기서 맥아더는 일본인을 사랑한 푸른 눈의 쇼군으로 군국주의 일본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국가로 만들었다고 묘사한다.
- 일본식 발음으로는 막카-사-(マッカーサー). 일본어로 진적좌(真赤左)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재벌 해체와 노조 허용, 토지 개혁 등의 조치를 두고 일본에서는 '진짜 좌익 빨갱이'라는 뜻으로 비꼬기도 했다.
- 한국에서도 번역가 류한수[36] 등이 '매카서'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긴 한다. 그래서인지 몇몇 번역본에선 매카서라고 쓰기도 하는데, 그래서 대체 이 인물은 누구냐 하는 독자들의 불편함을 자아낸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행 외래어 표기법상 매카서라고 표기하는 게 맞다. 다만 위에도 기술되어 있듯이 관용 존중 차원에서 맥아더라 쓰고 있다.
- 당연히 영화로도 나왔다. 1977년 영화 맥아더에서는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펙을 캐스팅한 이유는 실제 맥아더와 닮아서라고.[37] 1962년 5월 맥아더가 모교인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하여 후배 생도들에게 고별 연설을 하는 장면을 시작과 마지막에 넣고, 그 사이에 2차대전과 6.25 전쟁 시절을 회상 방식으로 보여주는 구성이다.
2차대전 장면은 적절한 고증을 보여 주지만... 6.25 전쟁 컷에서 패튼 전차가 나온다[38], 근데 2차대전 때에는 멀쩡하게 셔먼이 나온다. 그리고 F-4도 나온다. 맥아더 미화 때문에 트루먼이나 루즈벨트가 약간 찌질이로 나오지만 의외로 맥아더에 대한 연대기 서술이나 보통은 잘 잊어버리는 일본 군정 시기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KBS 방영판에서 맥아더 성우는 유강진.
- 한국 NL운동권 세력에게도 매우 부정적인 대상으로 간주되는데, 대표적으로 김남주 시인이 지은 시 <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있는 나라는>과 2005년 강정구 교수의 칼럼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 민중가수 박성환의 <맥아더>가 있었다. 특히 박성환이 부른 해당 곡은 당시 맥아더 동상 철거논란과 맞물려 논란을 일으켰고, 가사에는 맥아더의 양민학살 지시 여부, "서울을 탈취하라, 그곳에는 아가씨도 부인도 있다" 등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 해리 터틀도브의 타임라인-191 시리즈에서는 북부의 명장이자 맥클레런을 존경하는 다니엘 맥아더로 나온다. 웃긴 것은 실제의 맥아더는 스톤월 잭슨을 존경했다. 다만 이 작품의 시대는 남과 북이 갈려 있으니 이야기가 다르다. 1차 대전 당시 최연소 사단장으로 출연해서 그때까지 살아있는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의 경쟁자 겸 수제자로 나온다. 둘이 최초로 조우하는 부분은 명장면.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에는 필요하다면 남부연합을 독가스로 선제공격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남부연합 후방지역에 대한 기습상륙을 입안하는데... 뒤의 비중은 거의 공기 수준. 다만 등장인물의 언급으로 2차 대전 내내 리치먼드 북방에서 남부연합의 방어망에 걸려서 고전하는 것으로 나오긴 한다.
- 만화 보스의 두얼굴에서는 성기 컴플렉스를 가진 FBI 수사관 맥더아로 패러디된다. 일본의 맥아더에 대한 열폭 때문인지 온갖 찌질한 짓을 하다가 결국 미쳐서 본국에 소환당했다가 나중에 총맞고 죽는다.
- Steele에서는 1942년 필리핀에서 탈출할 무렵에 강철의 대통령에 의해서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숙청당한다.
- 미일 합작 영화 <EMPEROR>에선 토미 리 존스가 분했다. 외모 면에서는 싱크로율이 아주 높지는 않으나 맥아더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이나 오만에 가까운 행동거지를 매우 적절히 표현했다. 이 영화는 한국에는 <맥아더: 일본 침몰에 대한 불편한 해석>이란 괴이한 제목으로 개봉했다. 제목만 보면 맥아더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맥아더의 부관 정보장교였던 보너 펠러스(Bonner Fellers) 준장으로, 이 인물은 덴노의 전범 혐의 수사를 맡았던 일본에서의 행적 외에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의 행적 또한 논란의 대상이라 후세 전사학자들에 의해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영화는 가공의 사랑타령 때문에 역사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혹평을 들었지만 맥아더 캐릭터만큼은 좋게 평가받았다.
- 월드 오브 탱크 역사웹툰에도 비중있게 등장한다. 트루먼 대통령과 일본 핵폭격 배틀
- 강해설교자로 유명한 미국의 목사 존 맥아더가 더글라스 맥아더의 먼 친척이다.
- 2016년 9월 21일, 본격 시사인 만화의 한 편에 주인공으로 출연.
- 그보다 앞서 역시 굽시니스트의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가고일로 패러디되기도 했다. 뭐, 태평양 전쟁 당시의 더글라스 맥아더도 카리스마와 권력 그리고 인정사정 없는 성격이 가고일에 버금가는 수준이었기에 말이 되기는 하지만...
- Hearts of Iron 시리즈 에서는 육군 원수로 개근하고 있다. 3편,4편 한정 미국 대선 이벤트에서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등장할 수 있다. 4편에서 Man the GUNS DLC를 구매하면 2차 남북전쟁이 활성화되는데 파시스트로 가는 경로를 밟아 내전이 일어나면 비동맹주의와 파시즘 지도자로 등장한다.
- 도미네이션즈에서 영웅으로 등장한다.
[1] 원수는 정년 없이 종신 복무토록 규정되어 있어, 비록 은퇴하여 실제 근무는 안 하고 그냥 집에서 놀더라도 군에서 받은 의전 예우 그대로 받으면서 지내는게 가능하다. 원수 개인이 "전역"을 희망하면 예비역으로 신분전환되는데, 이를 이용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잠시 전역 신청 후 대통령 임기 만료 뒤 육군의 예비역 소집 명령을 받는 식으로 다시 육군 원수 자리를 유지했다.[2] 예비역 미국 육군 중장 출신[3] 일찍 요절했다.[4] 후술하듯이 맥아더는 명예훈장을 비롯한 미군 소속 군인이 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훈장을 받았지만 그는 보통 Army Distinguished Service Medal(DSM, 수훈복무훈장)만을 근무복등에 정장으로 차고 다녔다. 후줄근한 근무복에 더 상위의 훈장을 많이 수훈받았음에도 약장을 니미츠처럼 줄여서 달고 다닌 것도 아니고 유독 수훈복무훈장만, 그것도 약장도 아닌 정장으로 차고 다닌 부분은 맥아더의 아이덴티티인 담배 파이프, 필리핀 원수모와 함께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5]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아시아인들을 선정한 것인데, 이 리스트에서 맥아더는 마하트마 간디, 덩샤오핑, 아웅 산 수지, 리콴유, 코라손 아키노 등과 함께 정치인으로 분류되었으며 정작 일본 태생의 정치인은 리스트에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6] 전후 일본의 경제적 재건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LA 타임즈가 선정한 '20세기 경제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 리스트에도 포함되었으며, 정치인 중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 #[7] Mc, Mac는 켈트어로 son이란 뜻으로 MacArthur는 Arthur의 후손이라는 뜻이다.[8] 대처(Thatcher)도 비슷하게 잘못 옮겨진 경우로, '새처'가 옳은 표기이다.[9] 본래 옛 군가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오늘날에는 맥아더가 한 말로 기억되고 있다.[10] 퇴역식의 연설 중 나온 어록이다.[11] 위에 소개된 '노병은 죽지 않는다'와는 달리, 이 말은 맥아더의 오리지널 어록이다.[12] 1962년 5월 모교인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하여 후배 생도들에게 '군인이 명심해야 할 가치'로 역설한 말이다.[13]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에도 쓰여 있는 말이다.[14] 핵무기의 위력을 보고 한 말이다.[15] 일본군의 침공으로 필리핀을 탈출하면서 한 말로, 그는 결국 이 약속을 지켰다.[16] 위 연설과 연결되는 내용으로, 필리핀 수복 직후의 연설이다.[의역] 필리핀의 국민들께, 자유의 목소리인 맥아더 장군이 말씀드립니다. 내가 돌아왔다.응?[18] 일본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 한 말이다. 보통 일본을 놀릴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고 당시 일본인들도 격분했으나 전체적인 내용은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면서 독일이 45세의 지능범이라면 일본은 12세 소년이니 벌을 주기보다는 이끌어 줘야한다고 일본을 쉴드쳐준 것이다.물론 그 이후에도 미국은 계속 일본을 견제했다는게 함정그리고 미국은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19] 6.25 전쟁이 발발하여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한국으로 가면 일본군이 반란을 하지 않겠냐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고 한다. 과연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종전 후 맥아더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수많은 일본인들이 울면서 환송식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칼 맞아 죽은 쇼군들은 몇 명 있다. 미나모토노 요리이에, 미나모토노 사네토모, 아시카가 요시노리, 아시카가 요시테루 등...[20] 혹은 "전쟁에는 민주주의가 통하지 않는다.'''[21] 그런데 이 말은 본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기도 하다.(...)[22] 사무엘 울만(Samuel Ulman․1840~1924)의 시로 맥아더 장군이 일본 점령군 사령관 시절 집무실 벽에 걸어 놓고 늘 읽었다.[23] 체스터 니미츠 원수의 아들인 체스터 니미츠 주니어는 일찍이 아버지와 같은 전장에서 잠수함 함장으로 활약했으며, 1957년에 해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Texas Instruments에 입사하였다. 미 해군사관학교 엘머 B. 포터 교수의 저술로 1977년에 나온 니미츠 전기에 의하면, 니미츠 주니어는 부친의 후광과 그 자신이 전쟁에서 세운 공적으로써 충분히 4성 제독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변질된(?) 해군 장교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이 생겨 결국 전역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니미츠 원수는 아들이 해군을 떠나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았으나, 따뜻한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24] 탈모가 있어서 전쟁 중 사진에는 모자를 벗은 것이 없다. 그나마 모자 쓰지 않고 찍은 대표적인 것은, 히로히토와 나란히 서서 정색한 채로 같이 찍은 사진이다.[25] 뭔가 비슷한 사례로 윈스턴 처칠이 있는데, 괴벨스 때문에 의도치 않게 무슨 마피아 두목과 같은 이미지를 얻게 되었으며, 당사자는 무척이나 싫어했지만 정작 국민들은 엄청 좋아했다고 한다. 나치들을 정말로, 마피아가 하는 것 마냥 모조리 소탕해버릴 듯한 강인한 지도자의 모습이 연상되어서, 인기가 높았다고.[26] 옥수수 농사를 많이 짓는 미국 농촌에서는 직접 농사를 짓거나 이웃집 옥수숫대를 좀 얻어서 햇볕에 말려뒀다가, 직접 속을 파내서 파이프로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27] 이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영화)에서 나왔다.[28] 하지만 이와 별개로 다른 미군 장교들은 한국군의 군기와 전투력을 매우 회의적으로 보았다. 문제는 투입된 스미스 대대의 군기와 전투력도 개판 오분 전이었다는 사실.[29] 실제로는 정 반대였다 코코다 트랙 전투항목을 보면 알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맥아더는 트롤링만 일삼았고 제대로 싸운건 현지의 호주군 지휘관이였다[30] 동티모르 사태에서도 호주와 인도네시아는 대립하는 관계였다.[31] 싱가포르 전투에서 패배하고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32] 단 이는 의외로 흔한 사례로, 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의 경우에도 한 번의 서명에 20여개에 달하는 만년필을 사용하기도 했다.[33] 여기서도 맥아더는 잠시 눈을 붙였다고 하고, 트루먼 회고록에서는 쿨쿨 잤다고 깠다.[34] 트루먼이 말년에 쓴 회고록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이 회고록은 맥아더를 사정없이 까는 걸로 꽤 유명하다. 트루먼이 맥아더를 철저하게 미워하게 된 이후의 증언이라 좀 가려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70대의 원수가 19살 소위처럼 군다. 운운하는 이야기도 여기서 나온다.[35] 미국 측도 휴전을 굉장히 하고 싶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알 수 있는데 우선 회담장을 개성으로 정한 점, 전쟁 중이지만 개성만큼은 절대 점령하지 않겠다는 언질을 공산군 측에 말한 점 등이 대표적이다.[36]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를 번역한 역자다. 그외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올레크의 스탈린 평전,1917년 러시아 혁명을 번역했다.[37] 하지만 연기 자체는 별로였는지 그레고리 팩은 이 영화로 골든 라즈베리상에서 남우주연상을 탔다는 루머까지 돌고 있다. 하지만 실제 골든 라즈베리는 1980년부터 시상을 시작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이야기. 아래의 '오! 인천'의 로렌스 올리비에와 혼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38] 극초기 M46 패튼이 한국전쟁때 미군소속으로 쓰이긴 했다.[39] 1979년 TBC 전국 대학가요 경연대회 출신이며, 양평군의원 재직 경력도 있다. 2017년 초에 박근혜 대통령 찬양가를 제작해 파문을 일으켰다.[40] 육군 원수 아이젠하워의 이름은 니미츠급 항공모함에 붙어있다.[41] LA 한인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나 이미 오래 전부터 노숙자들의 천국으로 보통 사람들은 잘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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